“스킬이 있어도 에이전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Max Schoening은 Notion에서 오랫동안 제품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그가 Lenny’s Podcast에서 남긴 말 중에 이 줄이 가장 오래 남았다. “스킬보다 에이전시(agency)가 차별화다.”

처음에는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를 팀에 붙이기 시작하면, 이 한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에이전트가 스킬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코드를 짜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요약본을 만들고, 이메일 초안을 다듬는 일 — 이 모든 것이 이제 에이전트가 처리하는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기서 PM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더 많은 스킬을 갖춰야 한다”는 반사적 반응이다. SQL을 배우고, Python을 공부하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익히면 경쟁력이 생길 것 같다는 직관.

이 직관은 절반만 맞다. 틀린 절반이 더 위험하다.

에이전트가 실행할 수 있는 스킬의 범위는 이미 빠르게 확장 중이다. Andrej Karpathy는 이 지점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사고는 위임할 수 있지만, 이해는 위임할 수 없다(outsource thinking, not understanding).”

에이전트에게 SQL 쿼리를 위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숫자가 우리 사용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여전히 PM이 가져가야 한다. 스킬의 실행이 자동화될수록, 실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량이 오히려 더 결정적이 된다.

에이전시란 무엇인가

에이전시(agency)는 자기주도성이다. 더 정확히는, 상황을 해석하고 방향을 선택하며 실행을 시작하는 능력이다.

스킬이 “어떻게 하는가”라면, 에이전시는 “무엇을, 왜, 지금 하는가”다.

AI 에이전트가 팀에 합류한 이후, 이 두 역량의 비중이 뒤집혔다.

Andrew Ng은 이 변화를 구조적으로 설명했다. AI가 코딩 속도를 끌어올리면 가장 먼저 병목이 되는 건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역할”이다. 코딩이 빨라질수록 기획·판단의 대역폭이 부족해진다. 그 역할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삼성SDS AX센터가 공개한 수치가 있다. 에이전트 도입률은 5%에 불과하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어떤 업무에 에이전트를 붙일지, 어디서 멈추게 할지,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지”를 설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에이전시의 공백이다.

에이전시를 기르는 세 가지 실천

첫째, 범위와 완료 조건을 먼저 써라.

에이전트에게 지시하기 전에 “이 작업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PM이 먼저 명문화해야 한다. 완료 조건이 없는 지시는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에이전트야, 이 데이터 분석해줘”가 아니라, “이 리텐션 데이터에서 7일 이탈 패턴을 찾고, 가능한 원인을 3개 이하로 압축한 뒤, 각각에 대한 추가 검증 방법을 제안해”로 바뀌어야 결과물이 쓸 만해진다. 이 차이는 프롬프트 스킬이 아니라 문제 정의 에이전시에서 나온다.

둘째, 검증 기준을 실행 전에 설계하라.

에이전트가 결과를 냈을 때 “좋다/나쁘다”를 즉각 판단할 수 없다면, 그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사람은 에이전시가 아직 부족한 것이다.

2026년의 실전 교훈이 여기 있다. 에이전트가 틀렸을 때 더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가 됐다. 검증 속도가 에이전시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았다. “eval을 먼저, 기능은 나중에”가 에이전트 PM의 기본 순서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셋째, 에이전트가 멈춰야 할 지점을 명시하라.

에이전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만큼, “여기서는 나에게 물어라”는 경계를 설계하는 게 PM의 역할이다. 이 경계가 없으면 에이전트는 계속 실행하고, 오류도 계속 쌓인다.

이 경계를 설계하지 않은 팀은 에이전트가 만들어놓은 오류를 나중에 사람이 전부 되돌려야 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자율성을 준다고 에이전시가 높아지는 게 아니다. 멈출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에이전시다.

에이전시는 AI가 많아질수록 더 희귀해진다

역설이 있다. 팀에 에이전트가 많이 붙을수록, 진짜 에이전시를 가진 사람은 더 눈에 띈다.

스킬은 에이전트가 채운다. 방향은 사람이 잡는다. 이 구조에서 PM의 가치는 스킬의 폭이 아니라 판단의 밀도에서 나온다.

“코드로 빌드하는 비용은 이미 0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뭘 만들지 판단하는 비용은 갈수록 비싸진다.” — 이 명제가 PM의 현실이 됐다.

Max Schoening이 말한 “스킬보다 에이전시”는 AI 이전에도 맞는 말이었다. 에이전트 시대에는 이 명제가 생존 기준이 됐다.

당신의 에이전트는 지금 누구의 방향으로 달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