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이 3,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기업 내부 데이터를 검색해주는 서비스입니다. GPT-4o나 Claude를 직접 API로 붙이는 것보다 AI 성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지갑을 열었습니다.

이 수치가 말하는 건 하나입니다. 기업이 산 건 Glean의 AI 성능이 아니라, AI 비용을 예산 항목에 올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에이전트 제품 경쟁을 보는 PM의 시선은 주로 성능에 머뭅니다. 어떤 모델이 더 정확한가, 응답 속도가 빠른가, 한국어 처리가 잘 되는가. 이 질문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업 구매 결정권자, 특히 CFO와 IT 조달팀에게는 더 앞에 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AI 비용을 내년도 예산에 어떻게 잡나요?”

API 과금 방식의 AI는 CFO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사용량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구조는 예산 계획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팀이 더 많이 쓸수록 비용이 올라가고, 분기 예산 초과가 발생합니다. 예측이 안 됩니다.

반면 좌석 기반 혹은 월정액 구독 방식의 AI 솔루션은 다릅니다. “100명 팀에 월 얼마”라는 형태로 예산 항목에 올릴 수 있습니다. Glean, Microsoft Copilot, OpenAI Codex Enterprise가 이 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이 솔루션들을 선택하는 이유의 절반은 성능이고, 나머지 절반은 예산 확정성입니다.


삼성SDS의 AI 에이전트 도입률이 5%에 머문 현실을 여기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변 과금 구조에서 AI를 전사 배포하면 즉각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누가 얼마나 썼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과다 사용을 통제해야 합니다. 비용 센터별 청구 방식을 정해야 합니다.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의 예산 관리 구조가 AI 확산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OpenAI Codex의 엔터프라이즈 플랜은 팀 단위로 월 1,400만 원 이상입니다. 비싸 보이지만, 팀 전체가 쓸 수 있는 확정 금액입니다. 비용 예측이 가능해지는 순간 조달팀의 저항이 사라집니다. Anthropic이 Claude Code의 무제한 정액제에서 종량제 전환을 검토하자마자 기업 구매팀에서 재계산이 시작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과금 구조의 변화가 채택률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에이전트 제품을 설계하거나 파는 PM이라면 두 개의 피치덱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제품팀을 위한 피치덱입니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얼마나 정확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이 덱은 구매 결정 전에 검토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CFO를 위한 피치덱입니다. AI 도입 이전 팀의 월별 비용 구조, 도입 이후의 고정 비용 항목, 가변 비용이 사라지는 시점. 이 덱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에이전트 스타트업이 첫 번째 덱만 만들고 두 번째 덱을 빠뜨립니다. Glean의 3,000억 원은 두 번째 덱을 먼저 만든 팀에게 시장이 응답한 결과입니다.

기능 성능이 구매 결정의 입구라면, 비용 구조의 예측 가능성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에이전트 제품이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스케일하려면, 과금 구조 설계가 기능 설계만큼 제품 전략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설계하는 에이전트 제품, CFO가 내년도 예산서에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나요?